작업 일기/연말결산

[2022 연말결산] 일과 5호 & UE14

한경희 2022. 12. 30. 10:59

올해 책을 2권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는 오늘의잔업에서 만든 비정기 간행물 ‘일과’ 마지막 호입니다. ‘책’을 만들고 싶었던 저는 2016년부터 독립 출판을 시작해버렸는데…. 여기까지 오는데 5년이 넘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시에는 독립 출판 열풍이 있었고 콘텐츠에 대한 열망보다는 책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더 컸었는데요, 아직 어렸기 때문에 도전 의식이 남아있어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백번 낫다’라는 마음으로 '오늘의잔업'을 조직?하고 시작했었습니다. (인스타그램 @todays.extrawork)

 

‘일과’를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아직 한창 ‘사회생활’이라는 것에 적응 중인 주니어 디자이너였습니다. 왜 내가 회사에 다녀야 하는지,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 하는데 이게 나한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호한 감정과 생각들 속에 고민은 많아지는데 딱히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모르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죠. 이런 고민을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고 글로 기록해보자는 생각을 했고, 어리바리하게 1호 ‘일과 자아실현’이라는 주제로 얇은 책을 만든 게 첫 시작이었습니다.
그동안 네 개의 주제로 작은 책을 만들면서 참여자도 많아지고 읽을 만한 텍스트를 책에 실을 수도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도 4호까지는 재미있고 아이디어도 계속 생각나서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이후로는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근데 한국인이라 그런지 ‘5’라는 숫자를 맞추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일과’를 생각하면 항상 짝 안 맞는 보도블록을 본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을 치울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의잔업은 ‘언리미티드 에디션’ 참가를 목표로 탄생한 팀이기도 합니다. 2016년도에 처음 참가하고 여력이 있을 때마다 꾸준히 참여했었어요.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만 참여하거나 혹은 참가 신청을 하지 않기도 했었는데, 마침 올해 3년 만에 대면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에 그만 덜컥 신청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현장에서 즐기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정말 재미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숙제처럼 남아있던 ‘일과’의 5호도 본격 구체화에 들어갔습니다.

일과 5호 '일과 다음'

‘일과’는 호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5호는 ‘일과 다음’이라는 주제를 다뤘습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이직을 겪으면서 현재 일하고 있는 상태에서 더 발전적인 상태로 움직이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고, 여러 사람이 자기 일, 직장, 현재 삶을 기반으로 그다음을 선택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일과’를 만들지 않을 다짐도 했기에 마지막 호로써 ‘다음’이라는 키워드로 여운을 남기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이번 책에는 여러 번의 이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또렷하게 알게 된 경험, 항상 자신의 다음을 그려보고 실천하는 이야기, 업무적인 위치 변화로 인한 생각과 같은 ‘다음’에 대한 키워드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드물긴 하지만 초창기의 1, 2호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마지막인 만큼 앞서 만들었던 1~4호도 정리해서 합본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 원고부터 쭉 나열해보니 개인적으로 나름대로 성장 서사도 느껴지고 일관성도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이전 호의 '일과'에서는 일과 자아실현, 일과 취미, 일과 재능, 그리고 일과 돈이라는 주제로 에세이, 인터뷰, 그림, 이미지 등등을 통해 여러 사람들의 생각들을 담아냈었습니다.

5호에 실린 일과 3호 '일과 재능' 페이지 


오늘의잔업은 수익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정말…. 자기만족을 위한 팀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제작비를 위해 텀블벅으로 펀딩을 열기도 했습니다. 펀딩을 오픈하면 대부분 지인이 많이 후원해줘서 미안한 마음에 피하고 싶었지만, 아이디어 현실화를 위해 눈 딱 감고…. 마지막으로 진행했습니다. 텀블벅 후원자, 그리고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현장 수령하실 분들을 위해 특별 리워드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불필요한 굿즈는 싫고, 어떤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최근에 너무 좋아하는 라벨 스티커 만들어주시는 아이엠유어스티커스(@iamyourstickers) 계정에 용기 내 협업 제안을 했는데 다행히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한 장짜리 작은 판 스티커를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암욜스님은 진짜 위트 센스 유머 재치가 오백만 점이라서 엄청 귀엽고 재미난 그림과 공감 38286%의 멘트를 만들어주셨고, 덕분에 후원자도 늘고 현장에서 모객도 할 수 있었습니다.

준비 시간이 아주 짧은데다 현업에서 일도 바쁘고 에너지도 점점 고갈되어가는 와중에 스스로 벌린 프로젝트를 수습해야 하므로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다 보니 어찌어찌 언리미티드 에디션 오픈일이 다가왔습니다. 오랜만의 대면 행사라 참가자들 모두 들뜬 모습인 것 같았고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어요. 몸은 엄청 피곤했지만, 이상하게 즐겁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잔업 부스

개인적으로 왜 나는 북 페어에 집착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는데, 이번에 참여하면서 나름의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호기심과 열의가 가득 찬 공간에 가면 덩달아 에너지를 얻기도 하는 것 같아요. 물론 물리적으로 사람이 많아서 그럴 수도… 하지만 그런 점 때문에 저도 계속해서 창작자로 참여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부스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르고 창작자의 열정과 노력을 가까이서 엿볼 수 있는 점 또한 대면 행사의 매력이기도 하지요. 참가자로 있으면서 친구들과 지인들이 와서 반갑게 인사해주고, 사람들이 작업에 관심 보이고 공감해주고 여러 피드백을 받을 때 즐거움과 도파민..이 생각보다 강력하지 않나 싶습니다. (예상 외로 작업물을 보고 ‘귀엽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만든 사람을 그걸 의도한건 아니었는데…. 그냥 할 말이 없어서 귀엽다고 하신 걸 수도 있겠네요.) 관람객으로서도 관심 있던 작업물을 실물로 보기도 하고 팬이라고 주접도 떨어보고 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죠. 올해도 역시 3일 동안 많이 웃고 많이 이야기하면서 밀도 높은 행복하고 즐겁고 감사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계속해서 북 페어에 참여하고, 관심의 끈을 놓지 못하나 봅니다.

준비하는 동안은 피곤하고 힘들어서 ‘다시는 안 해야지…’ 생각하다가도, 이렇게 즐거움을 느끼고 나면 ‘다음에 또 해야지’라는 생각을 한다는 게 이상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제 만들 책이 없어서 앞으로는 참여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지만, 관객으로 온전히 행사를 즐기는 것도 기다려지기에 다음에 열릴 UE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