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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일기/연말결산

3. 친환경 과일 캐리어 - 후반부

 

사실 '우수디자인 상품선정', 일명 '굿디자인 어워드'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듬더듬 안내 절차를 따라가며 어렵게 등록을 했다. 출품 방법은 우선 기업으로 로그인해 온라인 입력 절차를 거친 후 심사장에 작업 설명 패널과 제작 실물을 세팅하는 것까지가 1차 접수다. 이때만 해도 정말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작품 설명 패널 만들 때도 많이 공들이지 않았고 패널 설치도 다른 동료에게 부탁했었다. 그렇게 1차 심사가 지나고 기억에서 사라질 때쯤, 2차 심사 대상자 명단이 나왔는데 우리 팀이 제출한 작품이 다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때도 그냥 운이 좋다고만 여기면서 아무래도 기업이니까 점수를 잘 주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그런데..! 2차 심사 발표 결과에서 과일 캐리어만 본선에 올랐다. 아마 요즘 사회의 관심사인 친환경이 주제였던 게 득점 포인트지 않았을까? 이제 사실상 수상은 확정된 상태고, 어떤 상을 받을 것인지 결정하는 3차 심사가 남았다. 큰 상 수상을 위해 다른 회사 작업보다 뽐낼 수 있는 샘플이 필요했고, 식품 팀에게 사정하여 진짜 과일까지 같이 포장해 20kg에 육박하는 과일 바구니를 품에 안고 난생처음으로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을 방문했다. 총 2번, 왕복 4번을 오가며 3번은 택시를 탔는데 멀미가 너무 심하게 났고 그 건물을 떠올리면 자동으로 멀미하는 기분이 난다..  심사장은 지하 전시실이었고 주로 제품 디자인 위주 실물 전시가 많이 되어있었고 공간 디자인의 경우 패널이 세워져 있었다. 작은 테이블 위로 높이 올라간 패널과 제품들 사이를 한참 지나니 맨 뒷줄 구석에 내 출품작이 누워있었다. 사실 3차 심사는 기존에 제출한 내용 그대로 활용한다고 해서 전시장에 가지 말까도 생각했는데 안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 다행히 현장 스태프에게 문의해서 책상 공간도 확보하고 보조 장치도 빌려서 패널도 겨우 세우고 과일까지 곁들인 실물 캐리어도 크기와 색상별로 세팅했다. 방문한 김에 다른 기업들은 어떻게 했는지 구경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삼성은 역시 엄청나게 제대로 준비해서 스케일에 깜짝 놀랐고 그 외에 아이디어 상품부터 레인지 후드, 치과 치료 의자까지 다양한 디자인 결과물을 보니 재미있었다. 3차 심사에는 국민 투표도 결과에 반영된다고 해서 (프로듀스101도 아니고...) 난생처음으로 사내에 투표 독려 게시글도 만들어서 올리고 친구들한테도 홍보하면서 할 수 있는 한 여기저기 소문을 냈다. 여기까지 오니 왠지 뭔가는 하나 받아야겠다 싶은 마음도 있었던 건 사실이다.

 

3차 심사 전시장 설치 모습

 

심사 기간이 끝난 후 진행하는 ‘디자인 코리아 2021' 전시에도 같은 내용으로 출품하라고 해서 양재 aT센터에도 갔었다. 공지된 작품 설치 시간에 맞춰서 갔는데 아직 전시 구조물 설치가 완료되지 않아서 작품 설명 패널과 캐리어가 잘 있는지 확인하고 그냥 돌아간 후에 철거하는 날에 다시 갔는데 설치 때 누워있던 패널이 그대로 누워있었다. 전시가 진행되는 3일 동안 계속 그렇게 엉망으로 진열되어 있었으리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작품 설치 관련해서 안내가 부족했던 점은 좀 아쉬웠다.

 

양재 전시장에서 철거까지 하고 한참이 지나서 동상 수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대를 아예 안 한 건 아니지만 진짜 상을 받으니까 얼떨떨하면서 기분 좋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제일 많이 수고한 프래그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얼마 전에 상장과 트로피를 택배로 받았는데 이걸 받아드니 진짜로 상 받은 게 실감이 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PM으로 참여한 프로젝트다 보니 여기에 애정도가 아주 높지 않았고 디자인 자체에 관여를 많이 못해서 상을 대표로 받는 것이 송구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담당자로서 끝까지 할 일을 다 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고생에 대한 보상은 또 있었다. 회사 내 ESG 경영 회의에 팀 대표로 참여해 같은 업무 내용으로 안건을 올렸었는데, 올해 회사의 ESG 지표 성적이 좋아서 나까지 덩달아 포상을 받게 되었다. 포상은 바로바로 과일 바구니. 회사에서 바로 집으로 쏴줬다. 맨날 구경만 했지 실제로 받아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된 보자기를 풀었는데, 이럴 수가. 새로 작업한 과일 캐리어가 아닌 라탄 바구니에 과일이 포장되어 왔다. ^^ 이게 무슨 일이야^^ 올 한 해 수고했다는 사장님 편지와 함께 손잡이 끝까지 풍성하게 쌓인 과일을 보니 뭔가 기쁘면서도 허망했지만, 그냥 맛있는 과일 먹고 고생한 나를 위로하면서 기분 풀기로 했다. 여러모로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크레딧

디자인 디렉션: 정의정

기획 & 매니지먼트: 한경희

아트 디렉션 & 디자인: 프래그 PRAG